2.28 학생의거 기념탑 - 대구            

   1960년 2월 28일 자유당 독재의 장막을 걷기 위해 일어선 대구시내 고등학생들의 의거를 기려 세운 이 탑은
     마산의 3.15와 함께 4.19의 정신으로 이어진 민주화에 대한 욕구의 상징으로 대구시민의 가슴속에 남아있다.
     시민의 성금으로 1961년 4월 10일 대명동 명덕로타리에 세워진 이 탑은
높이 10.3m와 23m의 두 개의
     흰 기둥으로 남녀의 젊음을 상징하는 탑의 한 쪽 다리를 대구시의 모형 위에 놓음으로써 대구시가 4.19혁명의
     발상지임을 나타내고 있다 .
 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영구적 보호와 역사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기위해
     1990년 2월 28일 현재의 달서구 두류동 두류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.

   전경 
   탑부분 사진- 앞면
   탑부분 - 옆면
   비문 - 앞면
   비문 - 뒷면
   입구 표석
  입구 비문
 
 
 
   비문 내용

  ♣ 비문 내용  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
2.28 학생의거 기념탑

  저 광막한 유사이전 아세아대륙의 동쪽 햇빛 고른 이 조그마한 반도의 강산을 점지하여
 먼 조상이 목숨을 깃들이기 비롯한 그날로부터 스스로 삶의 규범과 법도를 갖추어 연면히
 핏줄 이어 온 이 겨레는 한량 없이 슬기롭고 순탄하매 차라리 끊임없는 환난과 가난을
 오로지 견딤으로 이겨왔으니 그런데도 역사가 근세로 접어들매 그 수난은 더욱하여 마침내
 어느 하늘에도 일찍 없던 일제 마흔 해의 간을 씹는 인고도 다행히 벗었으나 꿈에도 뜻 않이
 그제는 국토가 양단되고 그 양단된 반쪽이나마 온 겨레의 소망속 자유와 평등의 내 나라
 대한민국은 세워졌더라. 그러나 여기서 처음 국가원수로 받들린 이승만은 그 자리를  누르기
 거  듭 세번인 열두 해의 집권을 기화로 그의 도당과 더불어 국민 위에 괴물같은 배신의 독재자로
 나타났고 급기야는 네 번째 선거에 즈음하여는 이미 여지없이 이탈된 민심을 휘어잡아 거듭 거듭
 정권을 앗을 야망을 달성키에 불의와 불법의 못할 바가 없더니 바야흐로 선거전이 불꽃 튀는 어느날
 월등 세승한 야당을 오직 억압키에 천박한 휼계로써 온 순결한 학원과 학도까지 구박하기 이르매
 이미 무수한 불의와 모순을 보아 온 젊음들인지라 권세앞에 스승마저 썩어진 그 제지함도 물리치고
 분연히 교문들을 박차고 일제 뛰쳐나와 몰려드는 경찰의 빗발 같은 철권과 발길에도 무릅쓰고
 우리에게 자유를 달라, 학원을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 소리소리 외치며 온 거리를 메꾸어 묻었으니
 이 날이 1960년 2월 28일이더라. 
  이 순정코도 용감한 항거야말로 저 포학무도한 일제 앞에 피로써 항쟁한 3 1봉기에도 빛난 바
 순탄하매 굽힐줄 모르는 겨레의 슬기로운 바탕의 발현이오 이들 젊음의 분노인즉  불의로 교오턴
 이승만독재정권을 마침내 쓰러뜨린 저 거룩한 4 19혁명을 진실로 있게한 길잡이가 되었었으니
 어찌 갸륵하고 장하다 아니하랴 이에 이같은 젊음들의 향기로운 거동을 기리 받들기 위해
 매일신문사의 선창으로 도내 뭇 학도들과 사회인사제위의 열성이 모여 여기 이 탑은 세워진 바이다